Unknown
Johannes Liechtenauer
Unknown
Germany(?)
Early New High German(?)
Unknown
Starhemberg Fechtbuch
요하네스 리히테나워(Johannes Liechtenauer, Hans Lichtenauer, Lichtnawer)는 14세기 후반 독일의 검술 대가였다.
그의 생애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리히테나워 전통에서 가장 초기의 문헌으로 여겨지는 익명의 저작 『폴 하우스부흐(Pol Hausbuch)』 에 실려 있다. 리히테나워는 이 문헌이 작성될 당시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해당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엇보다도 기억해야 할 것은 검의 예술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수백 년 전에 발견되고 발전된 것으로 모든 검술의 근본이자 핵심이라는 점이다. 리히테나워 대가는 이 예술을 완전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이 예술을 스스로 창안하거나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진정하고 올바른 무예를 찾고 체험하고자 노력했다.
리히테나워는 후대 제자들로부터 “고귀한 스승(Hoher Meister)”, 혹은 “대가(Grand Master)” 로 추앙받았다. 그는 『체텔(Zettel, 「기록」 또는 「교훈시」)』 이라 불리는 장문의 운문 형식 교본을 남겼다.
초기 리히테나워 계열의 검술가들은 이 시에 대한 방대한 해설서(Gloss)를 작성했으며, 자신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기본 틀로 활용했다. 이후 전통이 발전하고 확장된 뒤에도 많은 검술가들이 계속해서 『체텔』을 인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독일 검술 전통에 대한 리히테나워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파울루스 칼(Paulus Kal) 이 작성한 「리히테나워 형제단(Fellowship of Liechtenauer)」 명단에 포함된 검술가들은 15세기 독일 검술서의 대부분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또한 리히테나워의 가르침은 독일의 검술 길드들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15세기 후반 등장하여 검술 사범 자격 인증권을 독점했던 마르크스브뤼더(Marxbrüder) 와, 16세기 후반 등장하여 그 독점에 도전했던 페더페히터(Veiterfechter 또는 Federfechter)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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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테나워에 관해서는 간접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여러 추가적인 추정도 이루어져 왔다.
『폴 하우스부흐』는 내부적으로 작성 연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약 1390년경의 저작으로 간주되어 왔다. 또한 오랫동안 리히테나워의 직계 제자가 집필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 두 주장 모두 현재는 논란의 대상이며 일부 학자들은 이 필사본이 15세기 작품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리히테나워의 활동 시기를 14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한스 탈호퍼(Hans Talhoffer) 가 약 1448년에 작성한 MS Chart.A.558 필사본에 『체텔』의 가장 오래된 연대 표기본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리히테나워의 활동 시기를 15세기 초반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한다.
또한 『장검의 기록(Record of the Long Sword)』의 더 오래된 형태가 약 1418~1428년경의 필사본 MS G.B.f.18a 에 남아 있는데, 이 판본은 내용이 단편적이고 순서도 뒤섞여 있으며 H. 베링거(H. Beringer) 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는 리히테나워가 『폴 하우스부흐』에서 언급된 여행 과정 중에 접하고 정리한 여러 가르침 가운데 하나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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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양한 추정 연대는 파울루스 칼의 기록을 통해 어느 정도 좁혀질 수 있다.
칼은 약 1470년경 리히테나워와 관련된 검술가들의 명단을 작성했는데, 이를 「리히테나워 형제단(Fellowship of Liechtenauer)」 이라고 불렀다.
이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 가운데 대부분은 오늘날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다음 세 명은 비교적 확인이 가능하다.
- 마르틴 훈츠펠트(Martin Huntsfeld)
- 안드레 리그니처(Andre Lignitzer)
- 오트 유트(Ott Jud)
이들의 검술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 1452년의 Cod.44.A.8 에 남아 있는데, 그 시점에는 이미 저자들이 사망한 상태였다. 이는 이들의 활동 시기가 15세기 초, 혹은 그보다 더 이른 시기였음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지그문트 아인링(Sigmund Ainring) 의 제자로 추정되는 바이에른의 알브레히트 3세(Albrecht III of Bavaria) 는 1410년대에 교육을 받던 인물이었으므로, 그 시기에 이미 검술 사범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폴 하우스부흐』의 1390년경이라는 추정 연대와도 잘 부합하며, 리히테나워가 14세기 후반에 활동을 시작해 15세기 초까지 생존하며 가르쳤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결국 현재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리히테나워를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 검술 전통의 핵심 인물로 보는 것이다. 다만 피오레 데이 리베리와 달리 그의 생애를 직접 증명하는 공문서나 행정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의 실제 행적은 여전히 상당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